남북한 축구경기에 태극기 들었다고 화낸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2년 5월 11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박근혜는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고,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였다. 평양을 방문한 박근혜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비공개 단독회담을 가졌다.
박근혜는 북측으로부터 융숭한 대우를 받았다. 애초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이용해 북한에 입국할 예정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평양에 도착했다. 차량은 벤츠를 제공했다. 숙소는 ‘백화원초대소’였다. 북한 국빈영빈관이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과 인접해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 당시 묵었던 곳이다.
박근혜가 평양에 도착해서는 김용순 북한노동당 중앙위 비서, 림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북한 대남분야 실세들과 만났다. 돌아올 때는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귀환했다. 북한이 대통령과 정부 특사도 아닌데 국가원수에 준하는 최상의 예우를 한 것이다.
박근혜의 평양방문은 남북한 안팎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10월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씨의 회고록이 재점화시켰다. 해당 회고록에 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의 의중을 반영해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두고 여권은 ‘친북 행위’, ‘인권을 외면한 처사’ 라며 노 정부에 비판을 쏟아냈다.
야당은 발끈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02년 북한을 방북했다. 그 당시 김정일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공개되어야 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북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북한은 2016년 10월 말에 낸 입장문을 통해 “평양에 찾아와 눈물까지 흘리며 민족의 번영과 통일에 이바지하겠다고 거듭 다짐하였던 박근혜의 행동은 그보다 더한 종북”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2002년 방북까지 언급하며 비난했다.
북한이 박근혜의 평양방문을 들먹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북한 대남통일선전 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013년 10월 10일 담화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등 남쪽 고위 인사들이 방북했을 때 한 발언을 공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근혜는 평양방문 기간 무엇을 했으며 김정일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기에 북한은 이를 약점 삼아서 맹공을 퍼부었던 것일까.
박근혜는 김정일과 만찬 전, 배석자 없이 비공개 단독회담을 했다. 배석자 없는 비공개 단독회담은 남북회담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사람 간의 비공개 회동 전모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박근혜는 기자회견과 자서전에서 일부 밝혔다. 박근혜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정부의 특사나 회담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 합의문이나 발표문은 없었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과 몇 가지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정례 면회소 설치 ▲6.25 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국군의 생사 확인 ▲금강산댐 남북 공동조사 ▲북한 축구국가대표단 초청 동해안 철도연결 등을 제의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전부 흔쾌히 수용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앞서 귀국 직후에 가진 언론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인상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터놓고 솔직하게 대화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우리(남한) 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거나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등 호평했다.
박근혜의 평양방문과 김정일과의 비공개 회동이 국민속에서 점차 잊혀갈 즈음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다. 박근혜는 통진당을 친북정당이라고 해산시켰고, 대북강경 정책을 펼쳤다.
지난 2016년 10월에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언급하고 북한 주민의 집단 탈북을 종용하는 등 대북 강경발언을 이어갔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은 2016년 10월 19일 자 담화를 통해 “사실 평양 체류기간의 그의(박근혜) 행적을 다 공개해놓으면 ‘북 체제 찬양,고무죄’ 등 ‘보안법’에 걸려 처형되고도 남음이 있다. 만일 박근혜가 세월이 흘러 기억이 삭막해져 그런다면 우리는 일부러라도 길을 열어놓고 다시 와서 보라고 할 용의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민화협은 공개질문장을 통해 “10여 년 전 공화국 북반부에 와서 우리의 진정 어린 동포애적 환대에 너무도 감복하여 닭똥 같은 눈물도 흘리고, 제 눈으로 직접 우리의 놀라운 현실을 보고 그에 대해 찬양하는 발언도 적지 않게 한 박근혜(대통령)”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북한) 최고사법기관은 공화국 형법에 따라 이미 박근혜를 최고의 특급범죄자로 낙인하고 가장 엄한 극형에 처하도록 판결한지 오래”라고 주장했다.
전날(1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도 기자와의 문답형식으로 박근혜 발언을 험하게 비판했다. 박근혜의 모든 것을 까발리겠다고 협박한 후 박근혜를 대통령 호칭없이 ‘역도’ 등으로 칭했다.
당시 박근혜는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광화문에선 촛불시위자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면서 매일 집회를 이어갔다. 북한의 박근혜 협박 경고 5일 뒤 JTBC가 비선 실세 최서원의 태블릿PC를 공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갔다.
의문과 문제는 두 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민화협이 밝힌 공개 협박에 대해 왜 적극적 대응과 반박을 하지 못했을까. 또 2016년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 단독 보도 다음 날 대국민 사과를 했을까.
당시 박 정부가 민화협 협박에 대해 적극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박근혜가 그 어떤 큰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추측이다. 당시 촛불집회가 타올랐던 상황이다. 북한이 이를 공개할 경우 촛불이 횃불로 커지고 박 정권 몰락으로 이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또 JTBC 태블릿 건도 의문 투성이다. 최서원은 “나는 태블릿PC를 쓸 줄도 모르고 내 것이 아니다” 했고, 논란의 인물 고영태도 “모른다”고 했다. JTBC가 태블릿PC를 발견했다는 책상도 의문이다. 태블릿PC가 발이 있어 책상 속으로 숨어들어 갔느냐는 것이다. 아직도 이 문제는 논란 중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JTBC 태블릿PC는 북한 대남 공작의 일환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대북정책은 강경이었다. 북한 정권 레짐체인지, 김정은 참수부대, 대북선제공격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큰 반발을 보였지만 박근혜 평양 방문 기간 협박성 폭로는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19일 그 포문을 열었고, 5일 뒤 JTBC 태블릿 건이 보도됐고, 촛불시위는 타올랐고, 박근혜가 그 다음 날 대국민 사과를 발표해버렸다. 복합적인 상황들이 함축적으로 맞물려 있어 억측과 추측을 낳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박근혜의 평양방문으로 초점을 돌려보자. 박근혜의 평양방문 의구심은 김정일과의 회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문지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논란은 박근혜가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는지다. 박근혜는 당대표 시절인 2005년 10월 18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는 데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면서 “만경대 정신까지 안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박근혜가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김일성 업적을 기리는 주체사상탑에 왜 갔느냐는 것도 논란이었다. 박근혜 측은 만경대 방문은 박근혜 홈페이지에 잘못 기재된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눈여겨 볼 것은 박근혜 평양방문 때 밀착수행 자가 김성혜 조평통 서기국 부장이다. 김성혜는 판문점 실무접촉 북한 대표단을 이끌었다. 박근혜가 모란봉 전망대에 올라 평양시내를 둘러볼 때 김성혜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김성혜는 주체사상탑 전망대를 방문할 때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고 개선문을 참관할 때 검은색 우산을 준비하고 그림자 수행을 했다.
박근혜의 평양방문은 결실도 없지 않았다. 2002년 9월,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이 이례적으로 국군 포로의 생사 확인을 먼저 제안했다. 이는 박근혜 가 방북 당시 한 제의를 김정일이 받아들인데 따른 조치였다는 평가다.
또 같은 달 상암경기장에서는 남북한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렸다.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몽준 전 의원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의원은 “경기에서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약속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냐며 화를 냈고, 붉은 악마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자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항의했다”고 썼다.
박근혜는 이 점에 대해 자신의 저서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서로 마음을 열고 이끌어 낸 약속들을 가능한 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마치 남측이 약속을 깬 것 같은 뉘앙스였다.
박근혜는 김정일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5년 7월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뒤늦게 공개됐다. 당시 ‘주간경향’이 이 편지를 공개했다. 박근혜는 편지에서 “위원장님의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며”라는 문장을 사용했다. 또한 “부족한 부분이나 추가로 필요하신 사항들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기관에 위원장님의 지시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 대신 ‘북남이라고 썼다.
박근혜 방문을 주선했던 유럽-코리아재단도 의문이다. 박근혜에게 접근해 평양 방문 제안을 전달한 인사는 장 자크 그로하 전 이사장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덴마크 주재 프랑스 무역대표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장 자크 그로하 전 이사장은 10년을 평양에서, 12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10년 간 평양서 일했다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그의 행적을 보면 단순히 경제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는 2002년 4월 유럽코리아재단 이사로 취임해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퇴임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또 논란이 있다. 박근혜 서신이 김정남을 통해 전달됐다는 것이다. 2017년 2월 주간경향은 “김정일에게 보낸 박근혜 친서는 유럽코리아재단 소장이었던 장 자크 그로하가 USB와 출력물 형태로 들고 중국 베이징에 가서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만나 전달했다. 편지는 김정남의 고모부 장성택 라인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고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주간경향은 전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같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그런 서신은 북측에 보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주간경향은 하드디스크들을 분석하던 중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김정남과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메일은 2005년 9월 17일부터 2006년 3월 31일까지로, 총 22회 오간 내용이다. 박근혜와 북측이 주고받은 편지와 마찬가지로, 입수한 메일은 실제 오간 전체 분량이 아니라 일부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이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는 제1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다. 정부 당국의 승인이나 신고 없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당시 남북관계 개선을 바랐던 노무현 정부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박근혜 평양방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한 고위탈북자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박근혜가 평양 방문 순간 ‘모든 것이 털렸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무엇이 털렸는가’에 대해 “왜 북한 김정은이 해외로 나갈 때 별도 변기를 챙기는가를 생각해봐라”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박근혜가 묵었던 곳은 ‘백화원초대소’다. 이곳 국빈영빈관 전용이지만 한편으론 무엇이든 탈탈 털릴 수 있다는 의심이다.
박근혜 평양방문 미스터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간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 못지않다. 박근혜 김정일 간 어떤 내용과 제의가 오갔는지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준 USB엔 대북 관련,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 비밀이다.
두고 두고 드는 의문은 박근혜는 왜 평양을 갔을까.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정치적으로 순진했던 박근혜가 대남공작에 엮인 것이란 말이 많았다. 박근혜의 평양방문은 김대중 정권 때였다. 김 전 대통령의 묵시적 지원이 없고서는 평양방문은 커녕, 판문점 통해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 것은 이 때 전후였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평양방문이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킨다는 측면서 환영받을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결국 박근혜가 북한에 당했다는 대목에선 뼈아픈 실책으로 지적된다. 북한은 체제싸움에서 모든 것을 총동원 남한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 적화는 공작과 선동, 소요유발, 분열 파괴로 이어진다. 공작심리전에 능숙한 북한은 아마도 박근혜의 운명을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통일의 환상을 안고 섣불리 간 평양이 결국 박근혜 발목을 잡아버렸다. 순진한 박근혜가 당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박근혜의 3무(무지·무식·무능)가 낳은 또 다른 패착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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