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빛바랜 ‘촛불혁명’의 깃발을 치켜세운 그들이 아니던가. 문재인정권의 얄궂은 본성(本性)을 투시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이름하여 그 역겨운 조국(曺國)사태다. 권불오년(权不五年) 대통령 ‘문재인의 시간’ 그 금쪽같은 태반의 시공간을 허탈하게 삼켜버린 ‘조국의 시간’은 문재인 정치의 태생적 한계를 자백한 치욕의 시간으로 기록될 법하다.
좌파정권의 구두선(口頭禪)인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물구나무 서게 하고 위선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조국의 난(亂)은 권력의 독과점 의식에 매달린 그들만의 길들여진 ‘내로남불’ 풍속도의 상징적인 단면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출간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과 가족의 의혹에 대해 “검찰과 언론, 야당 카르텔의 창작품”이라고 싸잡아 호되게 비판했다.
자신을 검찰개혁의 깃발든 괘씸죄의 희생양이라고 엄살을 피웠다. ‘조국의 시간’은 낙양의 지가를 끌어올렸다. 감성적인 필치가 굽이마다 율동(律動)했다. 짙푸른 감성의 숲속에 진실을 가두어버린 솜씨가 돋보였다. “노무현대통령이 겪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다“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를 소개했다. 자신이 직면한 고초를 ‘노무현 수난’과 나란히 세워 동급(同級)임을 넌지시 흘리는 세심(細心)함이 반짝거리는 대목이다.
조국이 토해낸 말이다. ”민주당은 나를 밟고 전진하라.“ 오만과 위선이 어지럽게 뒤얽힌 ‘순교자’ 조국의 일그러진 가면인가? 당혹스럽다.
조국은 단언컨대 자타가 공인하는 문재인의 복심이다.
문대통령이 자신의 후계구도 1순위에 조국을 올려놓았다는 설은 일찌감치 청와대 언저리에 정설(定說)처럼 맴돌았다. 두 사람은 딱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문 정권 첫 민정수석을 거쳐 검찰개혁의 지휘봉을 움켜쥔 첫 법무부수장이었다. 장관실각 후, 문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장관에 마음의 빚이 있다“고 역대급 통석(痛惜)의 애정을 피력했다.
57세 헌칠한 몸매에 이목구비 반듯한 부르주아(Bourgeois) 냄새 물씬한 도시풍(都市風)의 멋을 풍기는 법학도 조국은 언(言)과 행(行)의 부조화를 빗댄 ‘강남좌파’의 전형으로 통했다. 그는 국회증언에서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토설하는 ’용기‘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용기를 거부했다. 선택적 용기의 사용법을 구사하는 재간이 예사롭지 않다.
조국은 회고록이 잘 팔리고 있는 것에 고무되고 있는 양 SNS에 부지런히 글을 올려 판촉의 추임새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와 조국의 객관적 정당성이 정비례한다는 착각은 금물이다. 언론은 재판에 붙여진 피의자 신분인 그의 회고록 발간 시점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물은 한 곬으로 흐르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는 곰삭은 고언(古諺)이 있거늘.
새파랗게 잘도 익은 2030세대의 꿈을 속절없이 앗아버린 조국 일가의 행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마땅히 법원의 몫이다.
4·7재보궐선거에서 솟구친 민심의 노여움을 받들겠다면서 조국사태에 대해 통렬히 사과하겠다고 다짐했던 송영길민주당대표가 강성 친문(親文)의 폭발적인 삿대질에 눌려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췄다.
문심(文心) 읽기에 급급한 이낙연, 정세균 대선주자들이 조국의 아픈 마음달래기에 보조를 맞춘 모습이 어쩐지 안쓰럽게 비쳐졌다. 구순 노경(老境)에 어울리지 않는 필자의 과민 탓일 수 있다.
대선 레이스와 문재인의 비좁은 하산(下山) 길목이 아스라이 오버랩(Over Lap)되는 가운데 ‘조국의 시간’을 놓고 집권당내 계파 갈등의 불길이 날름거리고 있는 모양새다.
악몽같은 조국사태의 재부상은 대선을 망친다는 여권의 우려가 진하게 넘실거린다. 문대통령은 심리적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간 포착의 순발력이 무딘데 겹쳐 황소고집이 맞물린 탓에 최선의 기회를 놓친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곧잘 노출돼 온 문대통령이다.
검찰개혁에 국정 에너지를 과소비한 사실 하나만 봐도 그렇다. 조국-추미애-박범계를 잇는 과속 드라이브가 건져올린 실속이 뭣인가? 갈수록 일이 더 꼬이고 있지 않는가. 청와대의 입김과 눈치 살피기에 민감한 정치인 출신을 줄줄이 법무장관에 기용한 것부터가 빗나간 발상이 아닌가.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귀에 못이 박힌 검찰개혁. 겉보기 핑계는 멀쩡하지만 숨은 노림수는 하나다. 살아있는 권력(현직 대통령)을 겨눈 검찰의 무엄한 ‘버르장머리’를 엄히 다그치겠다는데 있음이다.
운동권 권력의 요사스러운 술법이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있는 세상이지만 대명천지 어떤 고약한 모사(謀事)도 끝내 들통나고 만다는 역사의 교훈을 곱씹어야 할 오늘이다.
정권 말기 ‘문재인의 시간’은 촉(促) 빠르다. “내리막길에서는 시계바늘도 빨리 돈다”는 싱거운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이 말해주듯 끊고 맺음의 맛이 도무지 시원찮은 문대통령이 한치 어김없이 결단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거슬리는 쓴소리를 즐기면 발복(發福)한다고 했다. 충언역이(忠言逆耳)의 뜻과 상통하는 현묘한 이치다. 무릇 권력의 과욕은 돌이킬 수 없는 패착으로 이어지는 법.
집권 초입, 문대통령의 급진적인 과도한 적폐청산은 차라리 굿판을 닮았다. 숱한 ‘인격살인’의 과오를 범했다.
전직 대통령과 전 정권의 고관 대작들을 굴비엮듯 줄줄이 투옥한 처사는 ‘반문명적’이란 성난 목소리와 맞닥뜨리고 있다. 국치민욕(國恥民辱)의 현주소다.
취임사에서 선서한 ‘겸손한 권력’을 실천할 안성맞춤의 시간이 아닌가.
인과(因果)의 율법(律法)은 천심(天心)이라 하지 않았던가.
‘뿌린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함축한 경구다. ‘문재인의 시간’은 10개월남짓 짧고도 길다. 가볍고도 무겁다.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마무리다. 마무리는 시작의 끝을 의미한다. 마무리의 극치는 훌훌 벗어버리는 홀가분에 있다. 문대통령은 마음의 주름살을 펴고 2017년 5월 20일 19대통령 취임식 날의 초심으로 회귀할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광화문의 광기(狂氣)가 박근혜를 국정농단으로 몰았다. 이 정권의 국헌농단은 현재진행형이다. 국헌(國憲)은 나라의 뿌리가 아닌가. 길을 막고 물어보자. 어느쪽 죄질이 무거운가.
나이를 유세(有勢) 삼아 마구 쏘아올리는 꼰대의 막말로 치부말라. ‘이 나라 현대사의 음(陰) 양(陽)을 두루 부딪친 연륜의 고함소리를 허튼 수작으로 듣지 말라. 우국충정의 권리는 백성의 몫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속 비국적인 대통령잔혹사의 원조는 김영삼이다. 문재인이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문재인의 하산길섶에 업보(業報)의 돌개바람이 몰아칠지도 모른다. 정권 차원의 권력비리 의혹이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대통령이 스스로 밝히고 건너가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장한 결기(決氣)를 만나고 싶다. 호호탕탕(浩浩蕩蕩) 광대하게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실으면 정든 양산(梁山)땅 둥지를 향하는 귀향길이 훨씬 수월하지 않겠는가.
정재호 민족중흥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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