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대혁명은 1789~1794년 일어난 시민혁명이다. 구체제의 절대 왕정과 군주제를 붕괴시켜 왕이 없는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인권선언문을 인류사에 길이 남겼다. 하지만 혁명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공포정치가 지속되면서 자유와 평등의 이상은 멀어져갔고 결국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대혁명은 끝이 났다.
좌파들은 프랑스혁명은 한국의 촛불혁명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나라와 시대 배경은 달랐지만 실제 비슷했다. 루이16세가 파리 혁명광장(Place de la Revolution, 지금의 콩코드 광장) 한 복판에 세워진 단두대(기요틴, guillotine)에서 생을 마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광화문광장에서 일어난 촛불시위에 의해 탄핵과 구속당했다.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왕을 죽여야 한다.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이 진행 중이던 1793년 1월 19일 국왕 루이 16세에 대한 선고공판 법정에서 행한 과격 급진좌파 자코뱅(Jacobins)의 막스밀리앙 로베스피에르(1758~1794)의 연설이다.
이틀 후 루이16세는 생을 마감했다. 루이 16세는 광장을 메운 사람들을 향해 “국민이여, 나는 죄 없이 죽습니다!”라고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조롱과 “죽여, 죽여”라는 군중의 분노에 찬 목소리 뿐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박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야 한다. 국정을 사사롭게 운영해 국가권력을 개인 이익 추구 수단으로 삼은 정치세력, 경제와 안보를 망치고, 국민을 편 가르고 국민을 속여 온 사이비 보수 정치세력을 심판해 몰아내는 것이다. 흙 수저, 금수저 따로 없고, 더불어 잘 사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데 제가 앞장설 테니 부산시민들이 함께 해 정권을 교체하자.”
2016년 11월 19일 오후 ‘부산시민과 함께하는 시국 토크’에 참석한 문재인이 한 연설이었다. 문재인은 그 후 매주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을 찾아서 ‘박근혜 퇴진’, ‘하야’ 피켓을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가해진 탄핵에 대해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죄를 뉘우치지 않는 자로 낙인찍어 버렸다. 모두가 박 전 대통령을 마녀사냥했다. 문재인 좌파정권의 온갖 패착도 박근혜 탓, 국민의힘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았던 것도 박근혜 탓으로 돌팔매질을 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법치가 무너졌지만 진실과 정의가 살아 있다”고 외쳤지만 그녀를 향한 돌팔매질은 더해만 갔다.
공교롭게도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루이 16세에 적용된 것이 ‘국민주권원칙’ 위반이다. 지난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의결하면서 소추장에 명기한 탄핵 사유도 박 대통령이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주의를 위반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루이 16세 처형과 박 대통령 탄핵은 명백히 법치주의를 위반한 것이었다.
1793년 1월 21일, 오전 10시 쯤 이날 로베스피에르는 국왕 처형 장면을 직접 지켜본 후 프랑스의 실권을 쥔 집정관으로 취임한다. 2017년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후 31일 구속되었다. 문재인은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권좌에 올랐다.
문재인은 2018년 10월 프랑스 방문 중 한국의 ‘촛불혁명’이 ‘프랑스혁명’과 같다는 취지의 말을 하며 프랑스 혁명 예찬론을 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 하나하나에서 혁명의 빛으로 되살아났다”(파리시청 환영 리셉션), “우리의 촛불 혁명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프랑스 교민 간담회) “프랑스 혁명과 광화문 촛불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페이스북에 올린 글 ‘파리를 떠나면서’)고 썼다.
프랑스 혁명과 한국의 촛불집회가 닮은 점은 있다. 프랑스 왕정을 붕괴시키고, 박근혜 정부를 기득권 세력 적폐로 몰아 타도했다는 점이다. 프랑스혁명은 잔인성, 야만성, 폭력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광화문광장의 촛불광기는 파리 혁명광장의 그것보다 몇 배나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단두대에서부터 온갖 저주 포스터, 인권유린, 여성 대통령을 성으로까지 죽였다.
“박 대통령을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목을 쳐야 한다고 등장시킨 단두대, 목이 잘려 공중에 높이 들려있는 박 대통령의 피 흘리는 얼굴모형, 대통령에게 사약을 들이붓는 퍼포먼스, 대통령의 시체를 메고 가는 죽음의 장의행렬이 이어졌다.
프랑스 혁명도 증오와 적개심, 반목, 갈등, 분열을 조장하는 이런 끔찍한 살인과 파괴의 퍼포먼스에 ‘국민 축제’이니 ‘문화 축전’, ‘평화 시위’ 등으로 미화됐다. 촛불혁명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혁명과 촛불쿠데타 기획자들이 과격 강경 좌파세력이란 점도 공통점이다. 프랑스혁명을 주도한 세력은 보수온건의 지롱드(Girondins)파에 맞선 자코뱅이었다.
박근혜를 죽인 자들도 주사파 종북 세력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에 동조하는 이적단체(반국가 단체)를 포함한 친북반미좌파 단체다.
노동자 위주의 계급투쟁을 획책하고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혁명정권과 연방제국가 수립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로베스피에르 ‘혁명정부’와 문재인 ‘촛불정부’ 눈에 과거는 기존 질서가 적폐로 인식된다는 점도 같다. 로베스피에르가 앙샹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을 주도했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과거청산을 적폐청산의 기치로 내세웠다.
문재인 좌파 정부는 ‘촛불혁명의 완수’라는 이름아래 유례없는 ‘적폐청산’ 작업을 단행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세 명의 국정원장, 장차관급을 비롯한 110여명의 전직 고위 공직자가 이미 구속 수감됐다. 수없이 많은 인사들이 적폐로 낙인찍혀 폐인이 되었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 혁명에서도 최소 2만 명의 남녀를 ‘혁명반대세력’으로 몰아 ‘적폐청산’이란 이름하에 혁명광장의 단두대에 올려져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촛불쿠데타 핵심 문재인과 ‘잔인한 사형 제조기’ 로베스피에르의 닮은 점은 변호사였다는 점이다. 문재인은 인권 정의의 변호사로 포장했고, 로베스피에르도 마찬가지다. 문재인과 로베스피에르 평행이론은 다방면에서 닮은꼴이다.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은 무조건 혁명의 적으로 몰아 처단했다. 문재인도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적폐로 처단했고,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허물고 파괴시켰다.
프랑스혁명서 처형된 자 59%가 노동자 농민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잔인성은 혁명정권의 지나친 시장개입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서민경제가 망가지는 등 정책실패가 극에 달했음에도 이를 비판하거나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모조리 처형했다는 데 있다.
촛불혁명의 가장 큰 피해자가 촛불을 들었던 젊은층 세대다. 경제파탄에 이들은 실업자로 전락했고, 젊은 층들은 취업조차 할 수가 없다. 좌파들의 반칙과 특권에서 이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문재인 좌파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고, 지금은 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재앙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청년일자리, 외교와 안보, 경제참사, 코로나 독재정치, 대한민국 역사 체제 파괴 등에서도 희생양이 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인들이 삶도 비참했다. 이들은 빵을 달라고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탄압이요, 혁명 주체 세력들의 호위호식 뿐이었다. 문재인 정권 좌파지지 세력들은 민중을 위한다는 구호를 외쳤지만 민중의 피와 살점을 뜯어먹었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외쳤지만 더 자본주의를 만끽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인민의 벗’으로 불렸지만, 로베스피에르 역시 반대파에 밀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 혁명 주역 로베스피에르가 반역자로 처단될 줄은 누가 알아겠는가. 문재인도 민중의 벗으로 불렸지만 그 함께 촛불을 들었던 세력들 중 상당수가 문재인 정권에 등을 돌릴 줄 누가 알아겠는가.
다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차이가 있다.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로 사라졌는데, 문재인은 건재하다. 그러나 5월 9일 퇴임 이후 문재인이 무사할지 두고볼 일이다. 문재인은 퇴임 후 경남 양산으로 내려간다. 자유 우파 국민들은 본격적인 문재인 구속운동을 펼치겠다는 것이었다.
우파가 봉기를 일으키자 혁명주체 세력들은 나폴레옹에게 사태를 진압하도록 하고, 나폴레옹은 1799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보수파가 세력을 회복하여 프랑스 대혁명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번 3.9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일단 정권교체 성공했다그러나 이들을 문재인을 구속시킬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윤석열 당선자는 촛불의 부역자였다는 평가다. 안철수 정권인수위원장은 촛불집회에 참석, 가장 악랄하게 박근혜 퇴진 목소리를 높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 그 후 사태를 진압했지만 이들은 할 수가 없다. 이들 역시 거짓 선동 권력 찬탈 촛불 시위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을 일컬어 ‘자유, 평등, 형제애’의 대명사라고 칭한다.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은 ‘평등’, ‘정의’ ‘공정’이다. 프랑스혁명은 자유 평등과 거리가 멀었다. 라로슈자클랭 프랑스 후작부인이 아홉달간 쓴 회고록 ‘한 프랑스 귀족부인이 겪은 프랑스혁명’에 기록된 프랑스혁명은 광적인 폭력과 난동 그 자체였다. 대의를 내세운 시민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증오심에 불타는 파리 민중의 폭동이었다. 실제로 술에 취한 민중들의 복수극이었다고 저자는 기록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혁명은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는지, 과연 혁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프랑스혁명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혁명은 선이고 반혁명은 악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단순 도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쟁 승리만을 위해 공포정치가 실시되면서 혁명은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프랑스혁명은 다수의 국민에게 외면당한 소수의 혁명 엘리트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촛불집회 그후 과연 평등과 정의 공정이 실현되었는가. “촛불정치를 주도한 세력은 인류사의 유례없는 반동체제인 북한의 전체주의와 전제정권에 비판은커녕 포용과 굴종을 서슴치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반동세력’일 뿐이다”고 밝힌 조성환 교수의 촛불평가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집권 초, 문재인과 그 추종세력들이 아메리카 커피잔을 들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청와대 경내와 인근을 걸었을 때가 봄날이었다. 반드시 이들이 촛불에 활활 탈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프랑스혁명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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