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광주 출신 중국 음악가 정율성(1914∼1976)이 1951년 1·4 후퇴 때 중공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조선궁정악보 등 조선 왕실 관련 유물을 중국에 가져간 것으로 27일 확인됐다고 조선일보가 이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입수한 정율성 관련 저서·논문을 보면, 정율성은 1950년 12월 중국에서 중국인민지원군 창작조와 함께 북한으로 넘어온 뒤 이듬해 1월 서울에 내려왔다. 중공군이 1950년 11월 국군·유엔군에 밀리는 북한을 돕기 위해 전쟁에 개입, 대규모 공세로 1951년 1월 4일 서울을 함락하던 무렵이다. 당시 정율성은 1956년 귀화하기 전이었지만 그의 중국인 아내 딩쉐쑹(丁雪松·정설송)이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의 양녀여서 중국 공산당에서도 유력 인사로 꼽혔다고 한다.
‘항일음악전사 정율성(대동문화)’ 등에 따르면, 정율성은 서울에 머물면서 사대문 내 주요 시설, 고위 관료 사택 등을 뒤지고 다니다 ‘조선궁정악보’를 손에 넣었다. 광주문화재단 자료 등에 따르면, 그가 전쟁 중 챙긴 궁정악보는 종묘제례악과 연례악 등 2부 18집에 달한다. 그는 이 궁정악보를 중국으로 가져갔으며 그가 사망한 뒤 그의 아내 딩쉐쑹이 한중 수교 이후인 1996년 한국 정부에 돌려줬다.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는 “중공군이 서울에 머무는 두 달여 동안 대규모 인명 피해뿐 아니라 문화재·유물 약탈, 파괴 행위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정율성은 개전 초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아내 딩쉐쑹과 함께 내려왔다. 딩쉐쑹은 그해 7~8월 먼저 중국에 돌아갔으나 정율성은 9월 인천상륙작전 직후까지 서울에 머물다가 중국으로 간 것으로 기록됐다.
이 신문은 국가보훈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중 기간 공개 언급한 정율성이 당시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것도 그가 전쟁 때 우리를 침략한 북·중공군의 핵심 인사였던 데다 점령군으로서 문화재 약탈 행위까지 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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