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초 한국은행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한국이 드디어 일본을 따라 잡았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한국은 36년 간 일제 강점기 하에 살았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사이에 조인된 조약이 1주일 뒤 공표됨에 따라 8월 29일 조선은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조선은 일본의 일부가 되었고, 국어는 일본어가 되었으며 한국의 백성은 일본 제국의 2등 국민이자 일본인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5백여 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세기 중후반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이 근대 제국주의 열강으로 거듭났지만 조선은 이를 하지 않았다. 조선은 소중화 사상에 물들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뒤늦게 크게 당하고서야 불리한 조건으로 개항을 시도하면서 두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당시 조선에서는, 세도정치가의 문벌 가문들은 국제정세에 대해서 별반 지식, 관심, 대책이 없었고, 이들의 대외관은 중화사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역외 문화를 전부 오랑캐의 문화로 보았다. 이는 명나라의 멸망 이후 조선을 ‘우월한 중화 문명의 유일한 계승 국가’라는 ‘소중화(小中華)’론의 대두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1863년에 등극해 44년을 치세한 고종은 조선 나라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1905년 일제와의 보호조약이나 1910년 병합조약은 대한제국의 제도에 충실하게 규정됐다”고 했다. 또 “두 조약은 황제가 그의 개인적 권리를 처분하는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졌고 조약을 검토하는 어떠한 대의 권력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 체제를 근대적 입헌국가로 개편해야 했다. 국민을 근대적 주권의 주체로 만들어야 했고, 주권을 대표하는 의회를 설치해야 했다. 징병제를 실시해 국방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고종은 이런 역사적 책무를 감당할 만한 개명군주가 아니었다.
이런 과거의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오늘도 그 역사는 바뀌지 않았고, 국제정세는 더욱 대한민국을 조여오고 있다. 동아시아의 19세기 역사는 유럽 열강의 국제질서와 중국대륙의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한 전통질서의 충돌로 시작된다.
일본·중국·러시아, 세 제국 사이에 놓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은 제국주의 열강이 벌이는 음모와 경쟁, 전쟁의 무대가 되기 충분했다. 결국 압도적인 군사력의 서구 열강은 동아시아를 폭력과 전쟁으로 몰아갔다. 한반도라는 지리적 위치는 제국주의 열강이 이권을 놓고 벌인 전쟁터였다. 이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배경이 됐다.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74년은 이 나라에 사소한 부딪침은 있어도 큰 전쟁이 없었기에 지금의 번영을 이루고 살고 있다. 국제정세는 또다시 소용돌이 치고 있다. 대한민국도 그 소용돌이서 비켜가지 않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선포하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말은 오리무중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할지 모른다.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사태는 현존하는 국제 질서에서 언제든지 제2, 3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북한은 남침 사실마저 부인하며 북러 밀착을 과시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25일 사설을 통해 “한미가 제2의 조선 침략 전쟁을 도발하려고 한다면 무자비한 징벌의 철추를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신문은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당신은 러시아의 귀빈”이라는 취지의 전문을 보냈다고 전했다. 푸틴은 지난주 방북 때 “1950~1953년에는 우리 조종사들이 수만 번의 전투비행을 했다”면서 6·25전쟁 참전 사실을 공식화하고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명시한 것으로 해석되는 조약에 서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UN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결정적 고비에서 강대국의 이해 충돌로 이렇다 할 역할을 못한 지 오래다. 2차 세계대전 및 1991년 구소련 해체이후 구축된 미국의 일극(一極) 체제도 흔들리면서 글로벌 불안정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다음 전쟁 후보지로 대만해협을 꼽고 있다. 시진핑이 제시한 비전이 중국몽(中國夢)이다.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의 국가로 중국을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의 완전한 통일 대업 달성을 이루고싶어 한다.
1949년 마오에 패한 장제스(蔣介石)가 대만으로 넘어간 이후 70여 년 넘게 풀리지 않고 있는 난제다. 마오는 “무력에 의한 대만 해방”을 추구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와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시진핑은 다르다. 하나의 중국이다.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루는 날은 기약할 수 없다. 결국 무력에 의한 대만 해방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양상은 차원이 다르다. 미국, 중국을 포함한 진영간 전면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 때문이다.
한반도도 위험하다. 우리의 주권·영토와 한반도 평화를 지키려면 압도적인 군사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과 러시아가 최근 ‘무력 침략을 받을 경우 지체 없이 상호 군사원조’를 골자로 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핵 강국인 러시아와 핵·미사일 고도화에 나선 북한이 사실상 군사동맹을 부활시킨 것으로 ‘핵 동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돌발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게 현재의 국제정세다.
북한은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화성-17형 ICBM과 고체 연료로 기습 발사 능력을 갖춘 신형 ICBM 등 핵심 신무기들을 대거 선보였다.
미국의 자국중심주의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미중 갈등은 물론 글로벌 경제안보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세계는 저성장 흐름과 중국의 패권 도전에 따른 신냉전, 보호주의 등 1,2차 세계 대전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고도의 불확실성 시대에 놓여있다.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는 앞으로의 국제정치를 자유주의 진영이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권위주의 진영이 주도할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만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으로 서방 진영의 전열이 흐트러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국제무대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세력은 약화되고, 중국, 러시아, 이란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이 득세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힘이 정의가 되는 세상, 더욱 쉽게 그리고 자주 전쟁이 터지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한 난세 속에서 최근 권위주의 진영의 한 축으로 등장한 북한 김정은의 오판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모든 국민이 예리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국제 정세를 직시하며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때다.
역사는 반복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의 패망을 극복해서 오늘날 발전과 번역을 누렸는데 지금은 또다시 회귀하지 않는가 불안하다.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대한민국은 세계화의 승자다. 세계가 모두 문을 열고 하나로 연결될수록 대한민국은 성장하고, 보호주의로 문을 걸어 잠그고 블록화로 연결이 끊어지면 위기를 맞는다. 세계화는 끝났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효력이 다했다.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늘날 규칙을 기반으로 해서 체제를 지킨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다. 국제정세는 질서를 파괴시키는 자들이 세계의 미래를 결정지으려 한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세계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정치도 이를 직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끼리의 갈등과 분열이 극에 달해 있다. 내부에서 싸우다가 위험이 발생하면 싸움을 멈추어야 하는데 이 때다 하며 더 헐뜯기 바쁘다.
22대 국회를 국민들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여당은 친윤(친윤석열)·비윤(비윤석열) 대립 속에 정책 경쟁이 실종됐고, 야당은 이 전 대표에 대한 충성 경쟁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이다.
조선 500년은 하루아침에 망했다. 작금의 한국도 하루아침에 망국으로 갈 수 있다. 정치판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또다시 국민을 제2 망국민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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