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비약같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에게 정당방위 면죄부를 주었다.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좌익들의 요구와 해석이 박근혜의 김재규 면죄부론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좌익들과 김재규 추종세력들은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는 △유신헌법을 철폐시키고 헌법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민주혁명 △국민저항권사상의 발로 △다수 국민의 희생을 예방하는 정당방위 △ 민족사의 전통인 불의에 맞서는 의거. △살신성인 정신 △역사정의의 구현이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79년 12월 18일 김재규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유신은 1972년 10월 17일에 대통령 박정희가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한 것을 말한다. 유신은 좌우 진영에 따라 독재연장과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다르다.
7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소요 내란이 끊이질 않았다.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동족상잔의 6.25 비극을 경험한 박정희 정권 입장에서 유신을 통해 사회 통제와 부국강병 정책을 이끌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 운운하며 박정희를 저격했다고 하는 주장은 궤변에 가깝고, 구명과 훗날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염두에 둔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중앙정보부 차장(1973), 교통부장관(1974-1976)과 중앙정보부장(1976-1979)까지 역임했다. 김재규는 1973년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 소속의 9대 국회의원이 되어 배지를 달았다.
김재규는 유신에 찬성했고, 유신체제를 떠받들었던 박정희 핵심 측근 중의 핵심이었다. 김재규의 ‘유신의 심장’ 운운이 같잖게 들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가 얼마나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는가. 박근혜는 박정희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했다. 박근혜는 2012년 9월 “5.16과 유신이 헌법가치를 훼손시켰다”고 밝혔다. 박근혜는 2007년 7월에도 유신에 대한 부정적 건해를 밝혔다. 당시 대선후보 경선 때 유신체제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유신 시대에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거나 희생 또는 고통받으신 분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바 있다.
박근혜의 이같은 선언은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는 김재규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한 꼴이다.
박근혜는 2012년 3월 중순 부산 KNN 본사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박정희 유신독재와 유신체제 시절의 인권유린에 대해 한 번도 잘못된 것이 있다고 시인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산업화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대해서 저는 항상 마음으로부터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 그분들께 제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박근혜의 이 발언을 두고 당시 언론은 “박근혜가 박정희시대 독재 피해자들에 사과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는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 “독재종식을 위해 총을 쏘았다” 김재규 주장에 정당성을 주었다.
다음은 ‘김대중 자서전’ 1권 385-386쪽 내용이다.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2004년 8월 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 대표의 손을 잡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 아버지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하여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
이 같은 박근혜의 김대중 사과는 ‘박정희 독재=김대중 피해자’ 인식을 낳게 했고, 유신은 독재였음을 그 딸이 천명한 것과 다름없다.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가 ‘구국의 처단’으로 더욱 높이 평가받도록 해줬다.
박정희 시해는 70년대 말에 일어난 각종 소요사태가 원인이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김대중 김영삼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사실상 두 사람은 소요와 데모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가 그런 김대중을 찾아가서 아버지 잘못을 사죄했다는 것은 박정희가 이룩한 모든 업적을 그 딸이 깎아내린 것과 다름없다.
박근혜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실현과 성공을 위해 아버지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어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박근혜의 정치적 탐욕이 낳은 박정희 부정과 역사무지와 무식이 먼훗날 탄핵과 구속, 반역의 역사에 손을 들어주었다.
김대중에게 사죄했던 박근혜가 박정희 시해 사건 전모를 밝혀내고 김재규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전두환은 죽이기’에 앞장섰다 아이러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단 한 번도 전 전 대통령을 찾지 않았다. 도리어 법조계의 위헌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추징법’을 만들어 전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그 일가 친척들까지 짓밟아버렸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이순자 여사는 “어찌 박정희 대통령 따님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냐”며 한탄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이 여사가 유방암에 걸렸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독재 유신심장에 총을 쏘았다”(김재규), “유신은 헌법에 위배”(박근혜), “아버지 독재 피해 사과”(박근혜),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지지”(박근혜), ‘전두환추징범 통해 전두환 죽이기“(박근혜).
이것은 박근혜가 자유와 진실 정의의 역사 길이 아닌 반역의 길로 걸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기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박근혜는 자신의 탄핵무효와 무죄석방을 위해 싸워준 국민을 배신하고 자신을 탄핵시키고 구속시킨 자들과 손을 잡았다. 박근혜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내던진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를 정치적으로 매장시켰다.
박근혜의 처신과 행실에서 볼 때 유신을 부정하고 김재규에 정당방위성, 박정희 시해 빌미를 준 김대중을 민주화의 화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에 김대중을 지지했던 박지만, 이재명 지지 선언한 박근령 형제들. 통탄할 노릇이다.
26일 박정희 대통령 45주기다. 좌익들은 김재규 재평가와 명예회복을 적극 추진중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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