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령, 박근혜를 말하다⓸]“아버지 편안한 노후 사셨다면 언니 정치 하지 않았을 것”
[박근령, 박근혜를 말하다⓸]“아버지 편안한 노후 사셨다면 언니 정치 하지 않았을 것”
  • JBC
  • 승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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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월 필자는 일본 도쿄와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 여동생 근령씨(66)와 수십 번에 걸쳐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 일본의 한 출판사가 근령씨 회고를 통해 밝히는 내용을 담아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버지 박정희·육영수 여사에 대한 책을 내고자 결정했다. 그러나 책은 1차 원고가 완성됐지만 끝내 출간되지 못했다. JBC뉴스가 연재하는 글은 당시 출간되지 못했던 글을 일부 발취한 것이다. 시점은 3년 전이다. 이 글은 근령씨가 밝히는 언니와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다. [편집자 주]

박정희 대통령과 딸 근혜.
박정희 대통령과 딸 근혜.

[박근령, 박근혜를 말하다]“아버지가 편안한 노후 사셨다면 언니 정치 하지 않았을 것

아버지(박정희 대통령) 업적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게 한강의 기적이다. 서울의 상징 중 하나가 한강이다. 서울은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도시다. 이것을 빗대어 한강의 기적 이라 한다.

대한민국에서 1950년 북한의 6.25 남침 이후부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시기까지 나타난 반세기에 이르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용어다

아버지는 못먹고 굶주림의 나라를 오늘날 잘 살게 만든 지도자이셨다. 한국이 세계 경제 대국이 되는 초석을 다져신 분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이룩하신 한강의 기적은 아버지 혼자만으로 된 게 아니다.

아버지 때 독재고 뭐고 해도 아버지 정책을 120% 지지 해 준 유신헌법이 만들어지고, 유신회, 유정회 등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신헌법과 유신회, 유정회는 오늘날 경제 대국을 일꾸는 데 버팀목이 되었다.

언니가 정치를 할 때는 사실 버팀목이 없다. 모두가 언니를 이용하거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뿐이었다. 아버지는 독재자라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정책을 밀어붙이고 성과를 올렸다.

한국은 19506.25를 거치면서 그 당시 최빈국이었다. 먹을 거, 입을 거 조차 넉넉하지 못했던 때 였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45달러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경제대국 12위 안에 들고, 1인당 소득도 급속히 증가해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버지를 독재니 뭐니 비난을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에 대한 평가는 나중이라도 우선은 배고픈 가난을 극복하고 잘 살아보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설움 설움 중에 배고픈 설움을 당하지 않으면 설움을 모른다하셨다. 배고픔을 극복시키기 위해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잘살아 보자외쳐셨다.

그런데 국론이 하나로 통일 안되면 아무런 소용없다. ‘국민총화속에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나오는 것이다. 필리핀 수빅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월남도 국론통일이 안되고 분열해서 공산화가 되었지 않았는가.

아비지는 우리가 그런 역사 교훈을 잃고 있으면 보복 당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때가 되시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려고 했었다. 아버지도 독재자란 소리를 좋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한국적 상황이 있는 것이다.

아버지도 미국 유수의 잡지 타임지에 민주적으로 정치 잘한다는 글이 실리고 칭찬 받기를 원했다. 뉴스위크 등 외국의 언론들이 아버지를 잘한다 하시면 아버지가 인간인 이상 신이 더 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시대 이런 칭찬보다 더 절실한게 대한민국을 잘 사는 나라로 변모해 놓아야 한다는 절대적 신념이 계셔셨다.

아버지는 이를 이룩하신 다음 이런 칭찬을 듣고 살기를 바랐다. 아버지 때에서는 그 낙후를 끊고 싶어 하셨다.

아버지는 시대적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국민을 속이지 말고 민족을 속이지 말고, 민족의 재단에 피를 받치겠다고 하셨다. 민족중흥 책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야 내 목숨을 내놓았다.”

아버지는 당신 일생 민족과 조국을 위해 사셨다. 가족과 개인은 희생하셨다. 아버지가 임기를 마치시고 편안한 노후를 사셨다면 언니는 정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산업화도 되지 않았다. 70년대 수출 100억 불도 안되었다. 당시 한국의 의류 회사는 의류를 한국의 남산만큼 배에 싣고 수출을 했었다. 그러나 일본은 조그만 배에 전자 통신을 싣고 수출했었다. 한국이 수출하는 것은 외형상 컸고, 일본은 아주 작았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이 한국의 수십배에 달했다. <계속>

박근령=1954년생, 박정희 대통령 둘째딸이자, 박근혜 대통령 여동생, 경기여고-서울대 작곡가 졸업, 배우자 신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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