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제언]"근령아 달성에서 함께 살자"박근혜, 근령과 함께 사는 모습 보고싶다
[JBC제언]"근령아 달성에서 함께 살자"박근혜, 근령과 함께 사는 모습 보고싶다
  • JBC까
  • 승인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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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가족 사진.
박정희 대통령 가족 사진.

며칠 전 서울 마포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찾아서 관람했다. 거기에 가면 박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 가족사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 가족사진 중 눈에 띄는 것은 근혜·근령·지만 형제가 어릴 적 청와대 경내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들이다. 어릴 적 박 전 대통령 자녀들은 우애가 각별했다. 아버지 박정희(19791026)와 어머니 육영수(1974815)를 총탄에 잃었지만 자녀들은 우애를 간직하며 잘 살아왔다.

3남매 간 불화의 시작은 육영재단이었다.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사이가 틀어졌다. 처음엔 박근령·박지만이 합세해 박근혜와 갈등을 빚었고, 다시 박근령과 박지만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2008년 육영재단은 온갖 소송과 폭력사태 끝에 다시 박지만에게 넘어갔다. 어찌보면 이 역시 측근들의 모함이었다.

근혜·근형 자매는 특별하게 소원한 관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만남은 자제했지만 전화와 서신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박근령 씨와 박근혜·박지만과의 사이가 진짜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박근령씨가 20081014살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하면서였다.

당시 박근혜와 박지만은 결혼을 결사코 반대했다. 결혼하면 형제 인연을 끊겠다는 말도 오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과 지지자까지 반대했다. 그런데도 박근령씨는 사랑을 선택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일로 박근령 씨와 주고받았던 서신을 끊었고, 박지만은 박근령에게 보태주었던 생활비마저 끊어버렸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 아파트 살던 박근령 씨는 생활이 궁핍해지면서 서울 송파구 한 연립주택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으며, 그 후에 돈 문제까지 얽혀서 재판을 받기도 했다. 박근령 씨는 원래가 알뜸함이 배어있지만 식당가서 먹다 남은 반찬은 꼭 비닐에 담아서 가져가곤 했다.

박근령씨는 언니가 탄핵당하고 구속된 후 남편 신동욱과 함께 각종 태극기 집회에 참석 탄핵과 구속의 부당성을 외쳤었다. 박 씨는 지난 6월에도 우리공화당 서울역 집회에 참석 연단에 서서 자유대한민국 수호를 강조했다.

박근령씨는 언니 수감 기간 내내 눈시울을 붉히면서 살았다. 무엇보다 언니의 억울한 누명을 벗게하기 위해 국민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기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 국민들과 함께 추모했다.

그는 수감중인 언니 면회를 가고 싶었지만 가지 않았다고 한다. “언니는 국민의 대통령이셨다. 많은 국민들도 언니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나만 만나면 국민들이 섭섭해 할 게 아니냐언니가 국민들과 만난 후 그 다음 내가 만나는 게 순서다며 애써 자위했다.

지날 7월 말 유영하 변호사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박지만과 올케 서향희씨와는 수시로 만났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근령 씨를 만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신동욱씨와 결혼,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한 것에 대한 앙금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나이들수록 자매가 있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무리 밉다고 서로 다투고 토라져도 그래도 언니는 언니요, 동생은 동생이다.

1969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의 세 남매가 청와대 경내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놀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만, 박근령, 박근혜
1969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의 세 남매가 청와대 경내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놀고 있다. 왼쪽부터 박지만, 박근령, 박근혜

19748월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쓰러진 후 당시 프랑스 파리 유학 중이던 박근혜가 슬픈귀국길에 오르자 박근령씨가 직접 일본 나리타 공항까지 가서 언니와 함께 비행기에 동승하면서 슬픔을 나누었다.

박근령 씨는 언니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청와대로 재입성했었지만 단 한 번도 언니를 만나기 위해 청와대 방문을 하지 않았다. 박지만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의 속성을 진작부터 아는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을 뒤에서 응원해주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에 휘말린 후 구속과 탄핵을 당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박 전 대통령이 최서원 대신 박근령씨를 가까이 두고 이 일 저 일을 시켰다면 국정농단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란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전부 지난 과거가 됐다. 20221231일 특사로 풀려난 박 전 대통령은 대구 달성사저로 내려 간지 어느덧 15개월이 흘렀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는 9월 쯤, 국민화합 대국민 메시지를 낼 것이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와 지금도 국민 화합을 강조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총화를 국정운영의 우선 기조로 삼았다.

박 전 대통령이 박근령 씨 하나 품지 못하는 데 무슨 국민화합이 되겠느냐는 뼈있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좌익정권에서 온갖 탄압을 받은 후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의 달성사저는 외롭기만 하다. 청와대 구중궁궐보다 더 고요함이 사저를 짓누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박 전 대통령과 유영하가 결혼과 임신까지 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나왔겠는가.

박정희 대통령 가족사진.
박정희 대통령 가족사진.

흔히들 나이들어서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첫째 돈, 둘째 딸, 셋째 건강, 넷째 친구, 다섯째 찜질방이라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친구도 없다. 건강이야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지만 찜질방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처지다.

박 전 대통령에는 미우나 고우나 동생 박근형 씨가 곁에 있다. 박근령 씨 올해 나이가 일흔이다. 박 전 대통령 일흔둘이다.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에서 웃고 있는 자매의 모습을 본 국민들은 지금 다시 그런 장면을 보고싶어 한다.

박 전 대통령이 동생에게 꼭 이 말을 했으면 한다. “근령아 달성에서 함께 살자.”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하늘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어쩜 이것이 살아생전 부모에 대한 도리와 효()를 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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